60여년 현장지킨 '리틀 정주영' 정상영 KCC 명예회장 영면
'왕회장' 막냇동생…범 현대가 창업 1세대 '영(永)'자 시대 막내려 58년 금강스레트공업 창업…도료, 유리, 실리콘 등 국산화 공헌 소탈, 검소한 성격에 주인의식·정도경영…인재육성 등에도 힘써 KCC측 "고인 뜻 따라 장례 조용·간소하게…조문·조화 정중 사양" '리틀 정주영'으로 불렸던 정상영 KCC명예회장이 지난 30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6세. 정상영 명예회장이 타계함에 따라 '범 현대가' 창업 1세대인 '영(永)'자 항렬의 경영인 시대도 막을 내리게 됐다. 31일 KCC에 따르면 정상영 명예회장이 전날 저녁 작고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은주 여사와 정몽진 KCC 회장, 정몽익 KCC 글라스 회장, 정몽열 KCC 건설 회장이 있다. 1936년생인 고 정상영 명예회장은 강원도 통천 출신으로 '왕회장'이었던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막냇동생이다. 지금은 모두 고인이 된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 정순영 성우그룹 명예회장,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이 형이다. 1915년생인 정주영 명예회장과는 21살 차이인 정상영 명예회장은 큰 형을 아버지처럼 따른데다 말투, 걸음걸이, 외모 등도 비슷해 '리틀 정주영'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특히 정상영 회장은 맏형의 뒷바라지를 마다하고 1958년 당시 주택의 지붕 재료인 스레이트를 제조하는 '금강스레트공업주식회사'를 혼자서 창업했다. 정상영 회장이 오롯이 세운 금강스레트공업(KCC 전신)은 6·25전쟁 이후의 복구 작업과 1970년대 새마을운동 등에 힘입어 스레이트 수요가 급증하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1973년엔 증권거래소에 상장도 했다. 상장 이듬해인 1974년엔 울산에 고려화학을 세워 유기화학 분야인 도료사업에 진출했다. 또 1989년에는 건설사업부문을 분리해 금강종합건설(현 KCC건설)을 설립했다. 2000년에는 금강과 고려화학을 합병해 금강고려화학으로 새롭게 출범한 이후, 2005년에 금강고려화학을 KCC로 사명을 바꿔 건축내장재에서 도료, 실리콘, 첨단소재에 이르는 글로벌 첨단소재 화학기업으로 키워냈다. KCC는 지난해 9월말 기준으로 임직원수 4024명, 2019년 개별 기준 매출액은 3조119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지금은 세 아들이 KCC, KCC글라스, KCC 건설을 각각 분담하고 있다. 고인은 한국 재계에서 창업주로서는 드물게 60여 년을 경영일선에서 몸담아오며 국내 기업인 중에선 가장 오래 현장을 지켜온 인물로 꼽힌다. 특히 안으로는 튼튼한 회사로 키우고, 밖으로는 '산업보국'을 실천한다는 창업정신으로 한국 경제 성장과 그 궤를 같이 하며 현장을 중시했던 경영자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아울러 건축, 산업자재 국산화를 위해 외국에 의존하던 도료, 유리, 실리콘 등을 자체 개발해 엄청난 수입대체 효과를 거두어 기술 국산화와 산업발전에도 상당한 기여를 했다. KCC는 첨단 기술 경쟁력 확보에도 앞장서 1987년 국내 최초로 반도체 봉지재(EMC) 양산화에 성공했다. 또 반도체용 접착제 개발 및 상업화에 성공하는 등 반도체 재료 국산화에도 힘을 보탰다. 1996년에는 수용성 자동차도료에 대한 독자기술을 확보함으로써 도료기술 발전에 큰 획을 긋기도 했다. 2003년부터는 전량 해외로부터 수입에 의존하던 실리콘 원료(모노머)를 국내 최초로 독자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이로써 한국은 독일, 프랑스,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에 이어 실리콘 제조기술을 보유한 일곱 번째 국가가 됐다. 소탈하고 검소한 성격으로 평소 임직원들에게 주인의식과 정도경영을 강조하며 스스로 모범을 보인 경영자였던 고인은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자신의 모교인 동국대를 비롯해 울산대 등에 사재 수 백억원을 쾌척하는 등 인재 육성에도 힘을 보탰다. KCC 측은 "장례는 고인의 뜻에 따라 최대한 조용하고 간소하게 치를 예정"이라며 "조문과 조화는 정중하게 사양하고, 빈소와 발인 등 구체적인 일정도 외부에 알리지 않기로 했음을 양해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