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무역 규제, 왜 일본에 피해일까
일본이 수출 규제를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국내 첨단 산업에도 악영향이 우려되는 가운데, 일본이 입을 피해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7일 한국무역협회 등에 따르면 상반기 대일 무역수지는 약 100억달러에 달했다. 이중 전자부품(-21억달러)과 화학물질과 화학제품(-18억5000만달러)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각종 부품, 플라스틱과 1차금속, 비금속 등 소재도 각각 15억달러 가까운 손해를 봤다. 국내 산업이 그동안 일본에 지나치게 의존해왔다는 의미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1965년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한 이후 단 한번도 적자를 면치못했다. 누적적자만 708조원에 달한다. 최근 5년동안만 봐도 90조원에 가까운 적자를 기록했다. 국가별로도 일본은 가장 적자가 큰 나라다. 지난해 241억달러 적자로 사우디아라비아(224억달러), 카타르(158억달러), 쿠웨이트(115억달러) 등 산유국을 제쳤다. 전문가들은 국내 산업이 그동안 지나치게 일본에 의존해왔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일본에 의지해 다양한 산업을 발전시키는데 성공했지만, 의존도를 낮추지는 못했다는 얘기다. 대표적인 분야가 문제가 된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다. 1990년대 시장 주도권을 국내로 가져오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정작 장비와 재료는 여전히 일본 비중이 높다. 관련 일본 기업이 국내에 지사를 만들었을 정도다. 지난해 매출액 1조2603억원을 거둔 토쿄일렉트론(TEL)코리아와, 2092억원을 번 한국신에츠실리콘 등이다. 일부 기업은 국내에 공장까지 두고 있다. 일본 수출 규제가 스스로도 피해를 입는 조치라는 분석도 여기에서 나온다. 당장 소재를 국내에 들여오지 못하면 국내 지사가 수익을 낼 수 없게 되고, 본사 매출도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다. 글로벌 반도체 메모리 시장 절반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만든다.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소형 OLED도 삼성디스플레이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일본산 모바일과 IT 생산에도 큰 부담이 불가피하다. 세계적 수준인 일본 팹리스 산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글로벌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계가 사실상 TSMC와 삼성전자로 압축된 가운데, TSMC 독주체제가 다시 시작되면 비용 상승이 불가피하다. 장기적으로는 더 문제가 크다. 정부가 반도체 장비와 소재, 일반 소재 육성에 매년 1조원에 달하는 투자계획을 발표하면서다. 그 동안 일본에 의존했던 핵심 소재와 장비 등이 국산화할 경우 일본 경제에 손해를 입힐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고급 인력도 최근 주요 대학을 중심으로 양성 계획을 본격화하면서 고질적인 문제도 해결 방안을 찾아냈다. 여행 산업도 일본에 불리하게 움직이는 모습이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5월까지 일본을 향한 관광객 숫자는 전년비 5% 가량 줄어든 325만명이었다. 일단은 일본 관광객이 그동안 충분히 늘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여전히 후쿠시마 방사능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적지 않은 데다, 이번 일을 계기로 반일 감정까지 커지면서 일본 여행객은 더 줄어들 전망이다. 한 반도체 업계 전문가는 "일본 업체 공장이 국내에도 적지 않아서 스스로도 적지 않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갈등이 얼마나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국내 업계에 자립 필요성을 확실하게 각인시켜줬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