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책장]하태훈 위벤처스 대표가 추천한 한권의 책 '사라진 직업의 역사'
하태훈 위벤처스 대표. 2021년 우리는 코로나가 초래한 비대면의 세계, 언택트(untact)의 시대를 살고 있다. 현재의 조건과 환경에서 어떤 기술적 진보가 가속화될 것인지 예측하긴 어렵지만, 한 가지 명확한 사실은 많은 직업들이 사라질 것이라는 점이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로봇의 부상으로 인한 급격한 일자리 감소가 초래할 파괴적인 실업을 예측하고, 기본소득의 도입을 활발하게 토론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일자리의 소멸은 막연한 전망이 아니라 곧 닥쳐올 미래가 아닐까.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선 과거를 보라고 했던가. 근대 초기 한국에 등장하고 사라진 직업을 소개한 '사라진 직업의 역사'는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주는 흥미로운 역사책이다. 이 책은 조선말부터 일제 식민지 시대에 이르기까,, 한국이 형성되던 시기에 존재했던 직업들인 전화교환수, 변사, 기생, 전기수, 유모, 인력거꾼, 여차장, 물장수, 약장수 등의 면모와 해당 직업을 둘러싼 사회적 맥락을 세세하게 보여준다. '얼리어답터'였던 고종은 1898년 1월 경운궁에 최초의 전화를 가설했는데, 얼리어답터였던 만큼 전화를 통해 신하들에게 어명 내리기를 즐겼다고 한다. 문제는 신하들 입장에서는 전화로 받는 어명 하달이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는데, 국왕의 목소리에 어떻게 예의를 갖춰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들은 결국 고종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오면 즉시 받지 않고, 경건한 마음을 갖추고 전화기를 향해 네 번의 큰 절을 올린 후 공손하게 전화기를 들었고, 전화기에서 흘러나오는 존엄한 국왕의 옥음을 경청했다고 한다. 조선의 엘리트들이 전화라는 신기술을 어떻게 기존의 사회적 질서와 융합시켜(!) 받아들였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라진 직업의 역사 지금은 그 일의 모습조차 생소하지만, 전화교환수는 당시의 최첨단 기술이었던 전화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직업이었다(다시 말해 전화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는 직업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전화교환수는 대부분 여성들로 구성돼 있었고 이들은 '신여성'이나 '모던 걸'로 불렸다. 게다가 당시 경성우편국이 여성 근로자들에게도 고임금에 안전한 환경을 제공해줘 전화교환수는 매우 인기가 높은 직업이었고, 직업을 얻기 위해선 국어, 산술, 작문 등으로 구성된 채용시험까지 보아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고의 노력 끝에 어렵게 얻은 직업이 기술의 진보에 따라 한 순간에 사라지게 된다. 1935년에 이르러 자동식 전화교환기가 등장하며 전화교환수가 필요했던 공전식 전화교환기가 사라지게 되니, 40년 남짓밖에 되지 않던 교환수 직업의 역사가 끝나게 된 것이다. 그 해 10월 1일자 신문에는 '경성중앙전화국에 근무하던 전화교환수 100명이 퇴직했다'고 보도되기도 했는데, 얼마 전 자동수금 톨게이트가 도입된 후 문제되었던 도로공사의 요금수납원 뉴스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기술의 진보는 필연적으로 사회 변화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기술 발전의 방향과 속도를 예측할 수 없는 만큼, 우리에게는 적절한 사회적 조건을 준비하여 기술의 충격을 예방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 사회의 많은 일들 중 전화를 교환해주고, 요금을 수납하는 '비숙련 노동'과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고급 노동'이 얼마나 될까. 로봇이 우리를 대체할 여지가 생각보다 크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면,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을지 모른다. 최근 한국 기업들 사이에서, 비재무적 가치를 중시하는 ESG(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 경영이 하나의 방향으로 제시되는 것은, 한편으론 기술적 충격에 대한 대응으로 보여 반가운 마음이 크다. 이와 더불어, 미래 기업을 발굴하는 우리 심사역 동료들은, 초기 기업의 가치를 평가함에 있어서도 시장의 요구뿐만 아니라 시장을 둘러싼 사회에도 주의 깊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시장을 성장시키는 사회, 사회를 보호하는 시장을 만들기 위해 일조하겠다는 다짐을 조용히 해본다. 하태훈 위벤처스 대표는 다음 글쓰는 이로 양지훈 변호사를 추천했다. /박태홍기자 pth7285@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