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벤처기업, 활력잃은 한국 경제 책임질 '구원투수'
창업·벤처기업이 저성장 고착화, 고용시장 악화의 '이중고'를 겪고 있는 한국 경제를 책임질 강력한 구원투수로 등장하고 있다. 조선, 철강, 해운 등 한 때 우리를 먹여살렸던 중후장대한 산업들이 뼈를 깎는 고통을 겪고 있는데다, 내로라하는 대기업들마저 '정경유착'의 장본인으로 낙인 찍혀 경제를 견인할 주체가 불명확해지자 창업·벤처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첨단기술을 활용한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고 있는 가운데 이들 기술로 중무장한 작지만 강한 기업들의 등장을 바라는 시대적 요구도 힘을 보태고 있다. 25일 중소기업청과 벤처기업협회 등에 따르면 2010년 말 당시 2만4645개였던 벤처기업 숫자는 2만6148개(2011년)→2만8193개(2012년)→2만9135개(2013년)→2만9910개(2014년)→3만1260개(2015년)→3만3360개(2016년)로 3만개를 훌쩍 넘어섰다. 벤처기업 통계를 잡기 시작한 1998년 당시엔 고작 2042개였다. 연말 기준으로 3만1260개의 벤처기업이 있었던 2015년 당시 이들의 총 매출액은 215조9000억원에 달했다. 이는 매출이 300조원(2016년 4월 기준)인 삼성그룹보다는 적은 수준이지만 재계 2위인 현대차그룹(146조원)을 훌쩍 뛰어넘는 규모다. 2015년 전체 벤처기업 매출은 전년보다 8.6% 늘어났다. 같은 기간 -4.7%로 뒷걸음질을 친 대기업에 비해선 눈에 띄는 성과다. 2015년 현재 벤처기업 종사자수는 72만8000명으로 추산됐는데 이들 기업은 올해까지 총 3만2000여 명의 고용을 새로 창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조조정 등으로 오히려 실업자를 양산하고 있는 조선, 철강, 해운, 금융 등 대기업이 주로 영위하고 있는 사업들과는 반대되는 모습이다. 특히 벤처는 지난 한 해 대부분의 주요 산업이 침체기를 맞은 와중에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새로 조성된 벤처펀드 규모는 3조1998억원으로 전년도(2조7146억원)보다 17.9%나 증가했다. 그러면서 3조원대에 처음 진입했다. 벤처기업에 실제 투자된 액수도 2조1503억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정부도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하기로 했다. 주영섭 중기청장은 "창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스타트업', 창업기업들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울 수 있도록 하는 '스케일업', 그리고 국민들에게 창업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킬 수 있는 '붐업' 등 '쓰리업'에 중점을 둬 창업을 촉진시킬 것"이라며 "특히 스타트업(창업 초기기업)을 가로막고 있는 대출 중심의 금융 관행을 투자 중심의 생태계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역량을 집중키로 했다"고 강조했다. 실제 은행권 문턱을 넘기 어려운 창업 초기기업의 경우엔 창업자 자신의 돈이나 가족·친구·동료로부터 빌린 자금, 정부 출연금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시제품 제작이나 마케팅 단계가 돼야 엔젤투자나 벤처캐피탈로부터 수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금융기관들이 미래 성장성이나 기술력을 평가해 창업 기업들에게 대출을 해주지 않는 한 늘 자금이 쪼들리는 악순환이 되풀이 될 수 밖에 없다. 중소기업중앙회 김경만 경제정책본부장은 "창업·벤처기업은 성장 초기 단계에선 매출도, 이익도 발생하지 않아 은행 대출이 거의 불가능하므로 벤처캐피탈 활동이 중요한데 현재 국내 여건은 회수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아 자금조달에 큰 어려움이 있다"면서 "K-OTC 시장을 코넥스시장으로의 상장이 어려운 스타트업 중심 시장으로 재편하고, 이를 한국거래소가 지난해 11월 출범시킨 기술집약형 스타트업 주식거래 전담 장외시장(KSM)과 통합해 스타트업의 자금 조달에 물꼬를 터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벤처업계는 2000년 당시 세계 최초로 한국이 설립했던 '기술거래소'를 복원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인수합병(M&A), 기술 거래, 특허 거래, 공동 개발, 공공 판매, 인력 유치 등 다양한 혁신을 거래할 수 있는 기술거래소를 복원해 대기업엔 혁신을, 창업 벤처에는 시장을, 투자가에게는 자금 회수의 기회를 각각 제공해야한다는 것이다. 정준 벤처기업협회장은 "기존의 벤처특별법이 창업기업의 각종 혜택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새로운 벤처특별법은 '창업→성장→회수'가 원활하게 이뤄지는 건전한 벤처생태계 조성을 지원하는 내용으로 개편돼야 한다"면서 "아울러 법을 네거티브 형태로 개선해 허용 불가한 것을 규정하고 나머지를 모두 허용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중기청은 지난해 일몰이 10년 연장된 벤처특별법 개정 작업을 현재 진행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