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의 금리 딜레마…올려도, 동결해도 욕먹을 처지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10개월째 같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이주열 총재가 기준금리 인상을 놓고 딜레마에 빠졌다. 집값 급등, 가계부채 증가, 한·미 간 금리 격차 등을 생각하면 이미 금리를 올렸어야 하지만 고용 부진, 기업 투자 감소, 소비 둔화 등 지지부진한 경제 상황을 보면 선뜻 올리지도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낙연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금리 인상 필요성을 압박하고 있지만 물가가 생각 만큼 오르지 않으면서 금리 인상 명분마저 약해진 상태다. 여기에 미국 트럼프 행정부발 관세 폭탄까지 터지면서 정부와 한은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인 '2.9%' 달성도 장담하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13일 이낙연 총리는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해 금리 인상 여부와 관련해 "좀 더 심각히 생각할 때가 충분히 됐다는 데 동의한다"고 말했다. 이 총리의 발언에 다음 날인 14일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연 1.960%로 전일 대비 3.9bp(1bp=0.01%포인트) 올랐다. 이 총리는 '금리가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딜레마가 될 것'이라는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에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자금 유출이나 한국과 미국의 금리 역전에 따른 문제, 가계부채 부담 증가도 생길 수 있고 현재와 같은 문제가 계속될 것이라 양쪽의 고민이 있다"며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을 압박했다. 현재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해 11월 6년 5개월 만에 처음으로 금리를 올린 후 연 1.50%로 9개월째 동결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금리 인상 당시 한은은 "대출금리를 1%포인트 올려도 가계와 기업 모두 감내할 수 있다"며 경제 상황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지만 불과 1년도 안 돼 상황은 바뀌었다. 올해 들어 투자, 소비, 고용은 역주행했다. 경기 둔화로 경제성장률은 전망치를 밑돌았다. 경제 성장의 한 축이었던 투자 부문이 빠른 속도로 위축되고 있다. 지난 4일 한은이 발표한 '2018년 2/4분기 국민소득(잠정)'에 따르면 국내 총투자율은 31%로 전기(31.4%)보다 0.4%포인트 감소했다. 2분기 설비투자액은 39조126억원으로 전기 대비 5.7%나 줄었다. 감소율만 따지면 2016년 1분기(-7.1%) 이후 2년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건설투자도 정부의 부동산 정책 등의 영향으로 전기대비 2.1% 줄어든 62조35억원으로 집계됐다.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1분기보다 0.6% 증가하는 데 그쳤다. 상반기 기준으로도 전년 동기 대비 2.8% 성장하는데 머물렀다. 이는 한은이 7월 내놓은 상반기 성장률 전망치(2.9%)보다 0.1%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지난달 취업자수 증가폭이 3000명에 그쳐 8년 7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7월 취업자수 5000명에 이어 더욱 악화된 수준을 기록하면서 '고용쇼크'는 2달 연속 계속되고 있다. 이미 설비·건설투자가 악화된 상황에서 고용부진은 소비침체로도 이어질 수 있다. 여기에 트럼프발 '관세 폭탄'까지 터지면서 연 2.9% 성장도 안심할 수 없게 됐다. 정부와 한은은 올해 상반기 2.9%, 하반기 2.8% 등 올해 2.8%의 성장을 할 것으로 예상했다. 앞서 지난 7월 당초 연간 성장률 전망치를 3.0%에서 2.9%로 내린 바 있다. 지난 17일 미국은 20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오는 24일부터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고 같은 날 중국은 600억달러 규모의 미국 제품에 대해 5∼10%의 관세를 매길 것이라고 맞대응하면서 한국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커졌다. 금융시장에서는 금리 인상 시기를 이미 놓쳤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대책에도 집값은 급등하고 가계부채는 계속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과의 금리 격차를 생각하면 이미 금리를 올렸어야 한다는 것이다. 금리를 올리자니 경기 악화가 걱정되고 그렇다고 계속 묶어둘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골드만삭스, JP모건, 씨티, 노무라, 바클레이스, HSBC 등 글로벌 IB(투자은행)는 한은이 이런 딜레마 상황에도 10월이나 11월 금리를 올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노무라는 "한은이 금융 불균형 및 주택시장과열을 타개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긴 하지만 정부 당국이 얼마 전 새롭게 내놓은 부동산 대책의 영향을 평가할 때까지 기다려 볼 것"이라며 금리 인상 시기를 11월로 점쳤다. 골드만삭스는 "금융 안정 목표에 대한 통화정책 가중치가 높아진 상황"이라며 다음 금통위 정례회의가 열리는 10월 금리가 인상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바클레이스, 씨티 등 일부 IB는 금리 인상 예상 시기를 기존 10월에서 11월로 연기했다. 씨티는 "무역분쟁이 심화되는 경우 인상 시기가 더 미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