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오영택 前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실 정책비서관 "추경, 선의의 역설마저 안 보인다”
고대 로마의 최고 권력자였던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로마 사회의 안정이라는 명목 하에 권력 강화와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했다. 그러나 카이사르가 공화주의 전통을 위협하고 사실상의 독재를 추진한다고 생각한 원로원 의원들은 심하게 반발하며 카이사르에 대항했다. 이후 로마는 내전에 빠졌고, 이는 결국 공화정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이 사건으로부터 유래된 개념이 바로 '선의의 역설'이다. 아무리 나쁜 결과로 끝난 일이라도, 그 일을 시작한 동기는 선의(善意)였을 수 있다는 것. 현대 정치에서는 과도하게 이상만 좇는 행태를 비판할 때 자주 인용되곤 한다. 우리는 이미 오랜 경험을 통해 좋은 의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정책의 출발점은 언제나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결국은 참담한 실패로 귀결되는 사례를 끊임없이 목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다르다. '선한 의도'마저 안 보인다. 정부는 지난달 31일 26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확정했다. 박홍근 장관은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정책의 타이밍과 구성, 그리고 재정 규모를 종합해 보면 그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미 물가 상승 압력이 높은 상황에서 추가적인 대규모 재정 투입은 오히려 시장의 불안 심리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속도전에 나선 것은 정책적 필요라기보다 정치적 판단이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한국경제는 지금 복합적인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임기 초부터 추진된 이재명 정부의 무리한 확장재정 기조가 물가를 자극했고, 민생경제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서민과 청년의 신음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환율 폭등, 물가 폭등, 유가 폭등, 집값 폭등, 쌀값 폭등까지. 5대 폭등 속에서도 정부는 포퓰리즘에만 골몰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이 위기를 타개할 해결책이 또 26조 원 추경이라니, 충격을 금할 길이 없다. 세부 항목을 들여다 보면 더 가관이다. 영화, 공연, 숙박 할인같은 선심성 예산부터 농어촌 기본소득 예산 706억 원까지. 이게 과연 전쟁용 추경인지, 지선용 추경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과거에도 확장 재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정책을 추진하는 명분과 의도는 분명했다. 경제를 살리고 취약 계층을 보호하겠다는 목적 자체는 인정할 수 있었다. 그래서 결과가 실패로 이어졌을 때도 '선의의 역설'이라는 평가가 가능했다. 그런데 이번 추경은 대놓고 정치적 목적의 '현금 살포'라 당황스러울 지경이다. 재정의 지속 가능성도 간과할 수 없다. 국가총부채가 사상 처음으로 6500조 원을 넘어섰다. 가계부채와 기업부채가 각 3.0%, 3.6% 늘어난 상황에서 정부부채만 압도적으로 높은 9.8% 늘어난 것이다. 재정 지출이 단기적으로 효과를 낼 수 있을진 모르지만. 그 비용은 결국 미래 세대가 짊어질 부담이다. 지금과 같은 방식의 확장 재정이 반복될 경우, 재정 건전성이 빠르게 악화된다는 것 역시 자명한 사실이다. 이대로 가다간 대한민국은 빚더미 국가가 되고 만다. 국민들의 머리 속에 "어쩌면 정부가 나라를 망하게 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 전에 국가 재정을 볼모로 한 매표 행위를 중단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