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박물관·미술관 지천에 널린 종로구에 '이건희 기증관' 짓는 '공정 도시 서울'
서울시가 지난 9일 문화체육관광부와 종로구 송현동 부지에 '이건희 기증관'을 건립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또, 종로구라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종로구는 박물관과 미술관을 포함한 각종 문화시설이 지천에 널린 곳이 아니던가. 현재 종로구에는 서울역사박물관, 공평도시유적전시관, 돈의문박물관마을, 한양도성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북촌생활사박물관, 어린이민속박물관, 세종문화회관, 윤동주문학관, 박노수미술관, 무계원, 경교장, 백인제가옥, 딜쿠샤 등 구민들을 위한 문화시설이 발에 차이게 많다. 시는 지난 7월 종로구에 1900억원이 넘는 혈세를 쏟아 부어 만든 서울공예박물관을 개관하기도 했다. 뿐만인가. 내년 시는 종로구에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평창동 미술문화복합공간)와 서울연극센터를 새롭게 조성할 예정이다. 서울 열린데이터 광장의 '문화공간(전시시설) 통계'에 따르면 종로구는 서울에서 박물관과 미술관이 가장 많은 자치구다. 서울시내 전체 박물관·미술관 178개 중 55개(31%)가 종로구에 몰려 있다. 이어 중구(19개), 용산구·강남구(각 12개), 서초구(11개), 성북구(10개), 서대문구·송파구(각 7개) 순이다. 금천구는 박물관·미술관이 0개로, 25개 자치구 중 꼴찌를 기록했다. 서남권으로 범위를 넓혀도 문화불모지라는 현실은 나아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서남권에는 공공미술관이 '단 한 개'도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서울 내에서도 문화시설 빈부격차가 극심한데도 시는 굳이 종로구에 이건희 기증관을 짓겠다 한다. 오세훈 시장은 "서울공예박물관을 비롯해 경복궁, 광화문광장, 국립현대미술관, 세종문화회관, 북촌과 인사동이 인접해 있는 송현동 부지야말로 '이건희 기증관' 건립의 최적지"라고 주장했다. 승자 독식 체제를 잘 포장한 말이나 다름없다. 앞서 오 시장은 지난 9월 향후 10년 서울시정의 마스터플랜인 '서울비전 2030'을 발표하며 "'다시 뛰는 공정도시 서울'이라는 비전 아래 계층이동 사다리를 복원하고 도시경쟁력을 회복해 나가겠다"고 했다. 종로구에 박물관·미술관이 많다는 이유로 문화·관광 인프라 연계를 들먹이며 서울공예박물관에 이어 또 1000억원이 넘는 예산을 들여 송현동 부지에 이건희 기증관을 짓는 게 '공정 도시 서울'의 본모습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