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휘종의 잠시쉼표] 코로나19로 또 다른 시련 닥친 백화점
이 세상에 '백화점'이란 형태의 판매장이 등장한 것은 약 169년 전이다. '세계사속 경제사(김동욱 저)'에 따르면 1852년 프랑스 파리에서 아리스티드 부시코란 인물이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형태의 점포를 열었다. '봉마르셰(Bon Marche)로 이름이 붙은 이 점포는 내·외관이 극도로 화려한 대형 건물이었고, 각양각색의 상품을 정찰제로 판매했다. 이른바 백화점이란 곳이 탄생한 것이다. 당시 봉마르셰는 파리 최대의 사교 살롱으로 자리를 잡았으며, 일부에서는 봉마르셰를 베르사유에 버금가는 '소비의 궁전'으로 불리기도 했다. 실제로 봉마르셰는 1852년 50만프랑이었던 매출이 1860년에는 500만프랑, 1870년에는 2000만프랑으로 급증했다고 하니, 당시 사회에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킨 게 분명하다. 이후 백화점은 세계 각지에서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봉마르셰에 이어 파리에는 라파예트, 프랭탕이, 런던에는 휘틀리, 해러즈, 셀프리지가, 밀라노에는 리나센티가, 베를린에는 베르트하임이 생겨났다. 도쿄의 미스코시, 뉴욕의 메이시와 스튜어트, 마샬필드 등도 1890년대를 전후해 생겨났다. 식민지 상태였던 조선에도 이들 국가와 비슷한 시기에 백화점이 등장했다. 식민지 조선에는 1929년 오늘날 서울 명동 근처를 이르는 혼마치에 미스코시백화점이 들어선 이후 미나카이백화점, 히라다백화점이 잇따라 들어섰고, 남대문로에 조지야백화점이 들어서면서 이 일대가 백화점 거리로 이름을 날렸다. 식민지 시절이었지만 고객이나 소비수준은 결코 일본이나 서구열강에 뒤처지지 않았다. 당시 경성의 인구는 약 40만명으로 추산되는데, 5개의 백화점이 성업했다. 일본 도쿄가 인구 560만명에 27개 점포였고, 오사카가 270만명에 9개 점포였다는 것에 견줘보면 당시 소비수준을 짐작케 한다. 시설도 최첨단을 걸었다. 1931년 화신백화점이 설립됐는데, 화재로 1937년 건물을 다시 지을 때는 6층에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까지 설치했다고 한다. 해외에선 1989년 런던 해러즈백화점이 세계 최초로 엘리베이터란 기기를 설치했고 뉴욕의 김벨백화점이 1927년 엘리베이터를 설치했다는 걸 감안하면 상당히 앞선 수준이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지난해부터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고통을 겪고 있는 가운데 백화점들도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가뜩이나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들의 공세가 거세져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은 뼈를 깎는 각오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 감염자의 숫자가 하루 600명을 넘나들자 집밖을 나가기 꺼려하는 소비자들을 잡기 위해 백화점들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고 있다. 서울 여의도에 최근 문을 연 '더현대서울'은 백화점 설계의 '금기'인 유리창을 설치해 고객들이 유리창을 투과해 들어오는 빛을 쬐며 쇼핑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매장 곳곳에는 실제 나무를 심어 '친환경' 이미지를 강조하기도 했다. 롯데백화점 등도 소비자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체험 마케팅에서부터 전국 각지의 '강자'들을 불러보아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백화점 매장에서 코로나19 감염이 확산된 것으로 알려져 우려를 낳고 있다. 일부에서는 백화점 같은 대형 유통점포에도 전자출입명부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새롭고 다양한 시도로 소비자들을 집밖으로 끌어내려는 백화점 업계에 또 다른 시련이 닥친 것이다. 백화점 업체들이 이를 어떻게 이겨낼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