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그림자] 최대 실적 썼지만…9년째 멈춘 삼성증권의 발행어음
삼성증권이 '자산관리(WM) 명가'라는 수식어에는 이견이 없다. 삼성증권의 리테일 고객자산은 올해 1분기 기준 495조6000억원으로 500조원을 돌파는 눈앞에 두고 있다. 박종문 대표 취임 이후 삼성증권은 분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을 새로 쓰며 WM 경쟁력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그러나 실적만으로 성장이 증명되지는 않는다. WM 강자를 넘어 진정한 초대형 투자은행(IB)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풀지 못한 과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발행어음 사업 인가가 있다. ◆자기자본 8조원 넘었지만…발행어음은 9년째 대기 중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삼성증권은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매출액 7조1227억원, 영업이익 6095억원, 당기순이익 4509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17.7%, 82.1%, 81.5% 증가한 수치로 영업이익과 순이익 모두 분기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이다. 하지만 최대 실적이 곧 초대형 IB 경쟁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삼성증권이 수년째 풀지 못하고 있는 발행어음 사업 인가는 여전히 회사의 성장 잠재력을 가르는 핵심 과제로 남아 있다. 삼성증권은 2017년 초대형 IB로 지정된 이후 발행어음 사업 진출을 추진해왔다. 현재 자기자본은 8조680억원 규모로 관련 요건을 이미 충족한 상태다. 발행어음은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증권사가 자체 신용을 바탕으로 자기자본의 최대 200%까지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수단으로 꼽힌다. 삼성증권은 9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도록 시장 진입에 성공하지 못했다. 올해 초만 해도 분위기는 긍정적이었다.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는 지난 4월 초 삼성증권의 발행어음 사업 인가 안건을 심의했다. 업계에서는 사실상 시간문제라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상황은 급변했다. 같은 달 29일, 금융위원회가 인가 심사 중단을 의결하면서 발행어음 인가 절차는 다시 불확실성에 놓이게 됐다. 변수는 내부통제 이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초고액자산가 거점 점포 검사 과정에서 일부 영업점의 불건전 영업행위를 적발했고, 이후 제재심의위원회에서 일부 영업정지 3개월 제재안을 의결했다. 최종 제재 수위는 금융위원회 심의를 거쳐 확정된다. 만약 영업정지 이상의 중징계가 결정될 경우 발행어음 인가 심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결국 9년째 이어지고 있는 발행어음 지연의 배경에는 내부통제 문제가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또다른 큰 문제는 시간이다. 발행어음 사업은 단순히 하나의 신규 사업이 아니다. 운용 경험과 상품 경쟁력, 고객 기반을 축적하는 과정 자체가 경쟁력으로 연결된다. 이미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NH투자증권, KB증권 등은 발행어음을 기반으로 기업금융 역량을 확대해 왔다. 지난해에는 키움증권과 하나증권, 신한투자증권까지 신규 사업자로 합류했다. 삼성증권이 멈춰 있는 사이 경쟁사들은 관련 사업 경험을 쌓으며 격차를 벌리고 있다. 시장에서는 발행어음 인가가 더 늦어질 경우 삼성증권이 초대형 IB 경쟁에서 후발주자로 굳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WM 이후 과제는 IB·글로벌 사업 발행어음 인가 지연은 박 대표의 또 다른 과제인 기업금융 확대와도 맞닿아 있다. 삼성증권은 최근 구조화금융을 중심으로 IB 부문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올해 1분기 IB 부문 수익은 718억원으로 전 분기 대비 10.0% 증가했다. 이 가운데 구조화금융 수익이 634억원을 차지했다. 케이뱅크 기업공개(IPO), 화성코스메틱스 인수금융, 나우코스 공개매수 딜 등을 수행하며 성과를 냈지만, 아직까지는 수익 구조에서 WM 의존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업계에서는 향후 삼성증권이 초고액자산가 네트워크와 WM 고객 기반을 IB 사업으로 얼마나 연결할 수 있느냐가 성장의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IPO와 인수·합병(M&A), 회사채 발행 등 전통 IB 영역에서는 아직 경쟁사 대비 존재감이 크지 않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글로벌 사업 역시 숙제로 남아 있다. 삼성증권은 국내 WM 시장에서는 선두권 입지를 구축했지만 해외 사업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미래에셋증권 등 주요 경쟁사들이 해외 법인과 글로벌 투자은행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수익원을 다변화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여전히 국내 시장의 비중이 높다. 실제로 올해 1분기 실적 역시 국내 증시 거래대금 증가의 수혜가 컸다. 삼성증권의 올해 1분기 국내주식 수수료 수익은 275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41.8%, 직전 분기보다는 80.4% 증가했다. 반면, 해외주식 수수료는 74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8.2% 증가에 그쳤고, 직전 분기보다는 오히려 18.4% 줄어들었다. 박 대표는 취임 이후 WM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며 역대급 실적을 이끌어냈다. 다만 시장은 이제 그 다음 단계를 요구하고 있다. 발행어음 인가를 통한 초대형 IB 완성, 기업금융 경쟁력 강화, 글로벌 사업 확장까지. 'WM 명가'를 넘어 종합금융투자회사로 도약할 수 있을지가 박 대표 체제의 진짜 시험대로 꼽힌다. /신하은기자 godhe@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