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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섬유산업의 개척자 故 이동찬 명예회장

기업은 국가경제의 주요한 주체이며 사회발전의 원천이고, 직장인의 생활터전입니다. 따라서 후손에게 풍요로운 정신적 물질적 유산을 남겨 놓아야 한다는 것은 기업가의 사명입니다' 기업의 정체성에 대한 정의, 사람의 소중함과 그에 대한 책임을 담은 이 명료한 어록은 향년 92세로 타계한 고 이동찬 명예회장이 1987년 중앙대에서 대학생을 대상으로 강연했던 내용의 일부다. 짧은 내용이지만 그의 행동하는 삶과 노력이 오롯이 드러나 있다. 산업화와 근대화의 격변의 시기를 거치며, 우리나라 화섬 산업의 최선두에서 국민 의(衣)생활의 혁명을 일으키며 국가 경제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 온 코오롱. 그 뿌리에는 부국을 위해 청춘을 쏟아 부은 그의 삶이 있었다. '이상은 높게' 설정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등산식 경영과 '눈은 아래를' 바라보며 임직원을 비롯한 사회의 문제들을 따듯한 보살핌으로 살피는 공동체적 책임경영이 그의 경영철학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한국섬유산업을 개척하며 대한민국 경제발전을 이끈 1세대 기업인 우정(牛汀) 이동찬 명예회장은 1922년 4월1일 경북 영일군에서 이원만 창업주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호방한 성격의 창업주 이원만 선대회장(전 기업인, 전 국회의원)이 일본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기에, 이동찬 명예회장은 고향에서 넉넉치 않은 유년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런 가운데도 소학교를 수석 졸업한 이 명예회장은 어린 나이에 포항에 있는 일본인 상점의 점원으로 사회에 첫 출발을 내디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일(渡日) 하라는 부친의 편지를 받고 일본으로 떠나 당시 부친이 설립한 '아사히공예사'에서 열다섯 살의 나이로 경리를 맡아 아버지를 돕기 시작했다. 낮에는 일터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흥국상업학교' 야간부에 들어가 주경야독의 생활을 했다. 이후 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어느덧 청년이 되었지만 학구열은 사그라지지 않았고, 와세다 대학에서 정치학을 강의하던 조선인 교수의 권유로 시험을 준비해 이후 와세다 대학의 정치경제학부에 합격했다. 입학한 후에도 평소의 취미와 소질을 살려 정구, 축구, 기마 등의 스포츠는 물론 영어회화부, 변론부, 정치학회인 동아협회 같은 학내 동아리에 참여하며 대학시절을 보냈다. 1944년 1월13일 스물 세살때 입영 1주일을 앞두고, 신덕진 여사를 아내로 맞았다. 결혼한지 1주일째인 1월20일, 쯔루가의 중부 36연대에 조선학도특별지원병으로 입대해 식민지 청년으로서 감내해야 했던 울분과 고난을 겪으며 조국해방과 부국의 꿈을 키우던 중 조국은 해방을 맞았다. 광복 후 귀국한 청년 이동찬은 한국전쟁의 여파로 국민의 기초생활마저 위협받던 때, 헐벗은 국민에게 따뜻한 옷을 입게해 사회봉사와 애국을 실천하겠다는 신념아래 경북기업이라는 직물공장을 설립하며 이 땅에 섬유산업의 횃불을 처음 들어올렸다. 이동찬 명예회장은 더 큰 사업에 뜻을 품고 경북기업을 정리한 후 상경하여 단칸 사무실에 삼경물산 서울사무소와 후일 코오롱상사의 모태가 되는 개명상사를 1954년에 설립해 한국과 일본의 무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나일론의 개화기를 앞당겨 나갔다. 1957년 4월12일 부친 이원만 선대회장과 함께 '한국나이롱주식회사'를 창립하고 우리나라 최초로 나일론사를 생산하며 한국 섬유산업의 기수로 등장해 한국 섬유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당시는 나일론사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품귀현상까지 빚었던 시기로 한국나이롱은 1963년 국내 최초로 일산 2.5톤 규모의 나일론사 준공을 시작으로 1967년 공장을 증설, 10톤 공장으로 도약했다. 한국의 섬유산업을 개척하며 증흥의 밑거름을 마련한 것이다. 나일론사의 수요확대에 따라 1968년 판매전담회사로 코오롱상사를 창립, 이동찬 사장이 초대 사장에 취임했다. 당시 사장 취임사를 통해 밝힌 이 명예회장의 경영지침은 향후 코오롱그룹의 반세기 역사 속에 뿌리 깊게 전해져 오고 있다. 이동찬 사장은 기업의 건강한 이윤추구를 통해 소비자를 보호하고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등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약속'과 내적인 충실도를 높여 확고한 기반 위에서 회사를 육성, 발전시켜나가겠다는 '안정을 바탕으로 한 발전'을 선언했다. 이어 폴리에스터사의 제조에도 착수해 1968년 한국폴리에스텔 등을 설립했고, 1970년 한국나이롱 사장에 취임하면서 원숙한 경영인으로의 길을 걷는다. 1960년대와 1970년대는 국내 나일론섬유업계의 호황기인 동시에 화섬업계가 크게 도약한 시기였다. 설립 20주년이 되던 1977년 코오롱그룹은 그룹의 종합적인 발전과 경영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그룹 회장제를 신설하고 이동찬 대표이사 사장을 코오롱그룹의 회장으로 추대했다. 코오롱그룹의 최고경영자가 되기까지에는 열다섯 살의 나이로 부친인 이원만 선대회장을 도왔던 때로부터 기산하면 실로 40년 만의 일이자, 경북기업의 설립으로 사업가로의 길을 걷기 시작한 때로부터 셈해도 30년이란 오랜 세월이 걸린 셈이었다. 이 명예회장은 취임 후 신년사를 통해 경영다각화의 성공적인 출발을 기뻐하며 기업의 생명과 같은 경쟁력의 제고를 강조했다. 회장 취임해인 1977년, 한국나이롱과 한국포리에스텔을 주식회사 코오롱으로 변경했고, 급변하는 새로운 시대를 맞아 제조업에 첨단 경영을 도입, 새로운 도약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특히 1970년대 나일론사 공급이 수요를 앞지르자 한국나이롱은 사업다양화와 제품다양화를 모색하며 타이어코드 등 신제품 개발에 주력했다. 격동의 1980년대에 들어서는 '변신'이라는 모토아래 기존의 섬유산업은 양적, 질적 성장을 함께 도모하면서 필름, 비디오테이프, 메디컬 등 관련 사업 분야로 사업영역을 확대해 사업다각화에 성공하며 오늘날 코오롱그룹을 국내 유수의 그룹으로 성장시켰다. 또 1983년 한국섬유산업연합회 회장에 취임, 섬유인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섬유백서'를 발간하는 등 한국 섬유산업의 선진화에 힘썼다. 1990년대에 들어서 21세기형 산업의 총아로 떠오른 정보통신산업으로 진출을 추진해 그룹내 정보통신회사를 설립했다. 또 다른 신성장 산업의 하나인 유통업에도 적극 진출해 코오롱그룹을 21세기 신경제의 주체로 자리잡을 수 있는 확고한 교두보를 마련해 놓았다. 이원만 선대회장의 뒤를 이어 제2대 그룹회장에 오른 이 명예회장은 재임기간 동안 그룹 총수로서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코오롱을 명실상부한 그룹으로 성장시켰다. ◆기업은 내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것 "산업인의 사명에 투철하고 능률과 창의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는 보람찬 일터를 만들며 인간 생활의 풍요와 인류 문명의 발전에 이바지한다" 이 명예회장의 경영이념은 한국 경제의 성장과 맥락을 함께 해온 지난 반세기 코오롱의 역사속에 묻어있다. 광복 후 일본에서 귀국한 청년 이동찬은 경제인으로서 입신을 모색하게 되는데, 이는 반드시 몸을 바쳐 애국하는 것만이 최선이 아니라, 피폐한 조국의 경제를 일으켜 세우고 헐벗은 국민에게 따뜻한 옷을 입게 해주는 일도 그에 못지않게 큰 애국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었다. 이런 생각은 이 명예회장의 경영이념에도 반영돼 고도 산업사회를 건설하고 부강한 나라를 만들어 빈곤으로부터 해방돼 얻어 낸 자랑스러운 유산을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것이 모든 산업인의 고귀한 사명이자, 역사적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기업은 한 개인의 것이 아니라 임직원 모두의 사회생활의 터전이며 원천인 사회의 기업으로, 기업의 부실은 사회에 대한 배신이며 배임이라고 봤다. 이동찬 명예회장의 사회적, 공동체적 책임의식에 입각한 기업 경영이념으로 코오롱은 국가 경제 성장을 선도하며 맥을 같이 할 수 있었고, 60년의 역사를 간직한 기업으로 현재도 인류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기업으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동찬 명예회장의 경영철학이자 등산을 통해 터득한 이 교훈은 정상에 대한 목표를 세우고 겸허한 마음으로 한발 한발 오르다 보면 어느덧 정상에 서게 되고, 호연지기를 만끽하게 된다는 이 명예회장의 경험에서 배어 나온 것이다. 무리하게 스피드를 내거나 성급한 경영을 지양하고 그룹 전체가 서서히 산을 오르고 있다는 등산할 때의 마음가짐으로 그룹을 이끌어왔다. 특히 무리를 지어 등산을 할 때 뒤에서 따라 갈 때는 힘들고 짜증스럽지만 앞장서서 산을 오를 때는 뒷사람을 인도한다는 사명감과 보람으로 고된 줄 모른다는 교훈을 기업경영과 결부시켜 회사 임직원들에게 자주 들려주었다. 이 명예회장에게 등산은 인생의 지혜와 슬기를 터득케 했던 스승이며, 동시에 그 스스로 임직원이 직접 산을 오르며 교훈을 얻어가길 바라는 등산 예찬론자이기도 하다. 청렴결백한 기업인으로서 '기업은 내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것'이라는 소신으로 산을 오르듯, 마라톤을 하듯 같은 보폭으로 사업 보국을 위해 힘써온 이 명예 회장 같은 기업인이 있었기에 코오롱은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었다. ◆주요업적 및 대외활동 이 명예회장은 49년간의 기업 활동 중 화려한 수상경력이 입증하듯 대내외로부터 존경과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1982년 기업인 최고의 영예인 '금탑산업훈장'을 받았으며 같은 해 체육훈장 '백마장'을 수장했다. 1984년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나일론을 도입한 공로와 '산업발전을 통한 사회봉사'를 기업사명으로 하여 새로운 산업분야를 꾸준히 개척하여 발전시켜온 공로로 '한국의 경영자상(한국능률협회)'을 수상했다. 그리고 중앙대 '명예경제학 박사학위(1988)'를 받은데 이어 고대 최고경영자교우회의 '최고경영자대상(1988)'도 수상했다. 또 1992년 개인에게 수여되는 국내 최고의 훈장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장했다. 국가발전에 지대한 공로가 있는 자에게 수여되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은 개인에게 수여되는 국내 최고의 훈장으로 기업인으로서는 이 명예회장이 처음이었다. 이는 기업 경영인으로서 지난 40여 년 간 성실하게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선도해 온 것에 대해 인정받은 것이며, 1982년부터 10여 년 간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맡으며 노사문제 안정화에 기여해 왔음은 물론, 1989년 경제단체협의회 회장으로서 산업평화 정착에 이바지하여 사회적인 책임을 다한 것에 대해서도 인정을 받은 것이다. 특히 1982년 숨 가쁘게 돌아가는 우리나라의 경제 환경 속에 누구도 맡기를 꺼려할 정도로 어려운 자리였던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맡으면서 높은 수출장벽과 노사분규로 대두한 심각한 위기 상황 타개를 위해 임기 2년의 경총회장 자리를 무려 14년간이나 맡으면서 바람직한 노사관계 진입을 위해 노력했다. 대내외적인 어려운 환경의 변화를 극복하고 노사 양측에 서서 각각의 입장을 이해하고 반영하기 위해 몸소 뛴 노력으로 이 명예회장은 취임 초기의 포부대로 산업평화 정착에 많은 기여를 했다. 경총회장으로 이 명예회장은 지난 1989년 경제 5단체가 참여하는 경제단체협의회 창설을 주도해 한국 경제의 최대 걸림돌이던 노사문제를 풀어가는 데 주역으로 활동했다. 1990년에는 노사와 공익대표가 참석하는 국민경제사회협의회를 발족시켰다. 기업주와 근로자가 첨예하게 대립했던 1993년에는 경총회장으로서 한국노총과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 한국 노사관계의 새 장을 열었다. 노사분규가 심했던 1993년, 이 명예회장은 당시의 상황을 경영자, 근로자, 정부 3자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보고 기업을 이끄는 4가지 핵심요소로 자금, 근로자, 시설, 경영자를 꼽았다. 특히 근로자는 이들 4가지 요소의 핵심이며 기업의 기둥임을 강조했다. 이동찬 명예회장은 기업주와 근로자가 상호 대등한 위치에서 대화와 타협으로 분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이런 노력의 결과로 한국노총과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 한국 노사관계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4년에는 산업평화 선언을 통해 노사협력의 시대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는 이동찬 명예회장의 기업주와 근로자는 상호 공생 공영하는 공동 운명체라는 인식의 바탕위에서 이루어진 일련의 활동이며, 이는 코오롱그룹의 경영이념에도 반영되어 보람의 일터 운동을 탄생시켰다. 보람의 일터 운동은 기업주와 근로자의 공생공영 정신에 기반을 둔 것으로 신명나게 일하는 일터 만들기를 목표로 ▲참여의 보람 ▲성취의 보람 ▲대가의 보람을 이룩하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근로자는 정당한 임금을 받되 일 자체에서 성취의 보람을 느끼고, 이룩한 결과에 따른 승진과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경영자와 종업원이 다 함께 노력하자는 것이었다. 이 정신은 후대 이웅열 현 코오롱그룹 회장의 경영방침에도 이어져, 산업계 전반의 변화로 말미암아 노사갈등이 극심했던 화섬업계에서 2007년 항구적 무분규를 골자로 하는 노사상생동행을 선언, 강성노조로 경쟁력을 잃어가던 화섬업계에 노사 상생 기류를 확산시키고 기업의 실적도 크게 개선해 코오롱의 미래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밖에 이동찬 명예회장은 통일문제와 관련, 민간단체인 민족통일중앙협의회 임원으로 조국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특히 170여개의 지역협의회 구성에 앞장서 통일과 관련된 사업에 있어 많은 지원을 했다. 이 명예회장은 기업가로서뿐 아니라 공인이자 더불어 사는 이웃이 되기 위해 사회공헌활동도 적극적으로 해왔다. 1974년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사회활동을 시작한 이래 1975년 대한농구협회 부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사 등으로 각종 단체에서 활약했다. 1980년에는 대한농구협회 회장에 취임한데 이어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으로서 스포츠를 통한 외교에도 일익을 담당했다. 또 대한골프협회 회장을 맡아 '골프백서'를 발간하는 등 골프 대중화사업에 힘씀으로써 오늘날 한국선수들의 세계 골프대회 재패를 위한 토양을 마련했다. 한국 마라톤의 열성적인 후원자로 널리 알려진 이 명예회장은 비인기종목이던 마라톤과 육상의 중흥을 위해 1985년부터 현재까지 매년 '전국 남녀고교 구간마라톤대회'를 주최해 마라톤 선수의 저변확대와 인재의 조기 발굴 육성을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코오롱마라톤 팀을 창단해 우수한 선수들을 육성하고, 한국마라톤 기록 갱신을 위한 활력소의 일환으로 기록 갱신자에 대해 연구장려비를 지급한다는 일련의 내용을 발표해 마라톤 선수들을 격려했다. '손기정 선수 이후 맥이 끊겼던 국내 마라톤 선수의 올림픽 금메달 획득'이라는 이동찬 회장의 바람은 청년기 마라톤 기록갱신으로 1억 원의 연구장려비를 받은 황영조 선수의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 제패(1992)를 통해 현실화됐다. 1992년 체육훈장 청룡장을 받은 이동찬 명예회장은 1993년에는 21세기 경영인클럽의 '신산업경영대상', 1994년 한국경영학회의 '한국경영자대상'을 받아 대외적으로 탁월한 경영인으로서 위상을 인정받았다. 이 명예회장은 2002 한일 월드컵 초대 조직위원장을 역임하며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와 축구 전용경기장 확충 등에 많은 기여를 했다. 한편 이웃과 더불어 번영하는 것을 기업인의 소명이라고 믿으며 '더불어 사는 우리사회' 만들기에 노력해온 이 명예회장은 기업경영활동을 마감한 후 코오롱그룹 오운문화재단의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살맛나는 세상'캠페인 사업을 하는 등 사회봉사 활동에 힘썼다. 산간벽지 학교에 학습기자재 보내기 운동을 벌였다. "어려운 이웃에게 용기와 자활의 기회가 되고, 지역 주민들에게도 편안한 쉼터가 되기를 바란다"며 1992년에는 12억원 상당의 강북구 길음동에 길음사회복지관을 건립해 기증하고, 2003년 사회복지법인 운가자비원에 27억원 상당의 수유종합사회복지관을 건립해 기증했다. 1995년에는 충북 괴산에 청소년 수련마을인 보람원을 개원해 한국 청소년 교육의 새장을 열었다. 또 살맛나는 세상 캠페인의 일환으로 사회의 선행·미담사례를 발굴해 널리 알리기 위해 그의 호를 딴 '우정선행상(牛汀善行賞)'을 제정해 2001년부터 매년 4월 시상식을 통해 선행을 격려해 왔다. ◆구구익선(舊舊益善), 오래 될수록 좋은 것이 있다 이동찬 명예회장의 슬리퍼는 1947년부터 신었으니 50년이 넘었다. 버려도 아깝지 않을 만큼 낡았지만 슬리퍼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오랜 세월과 알뜰한 애정이 빚어낸 정겨운 멋이 있다. 10여년전 비서실에서 그 슬리퍼를 버리고 새 것으로 바꿨다가 이 명예회장에게 멀쩡한 것을 왜 버리느냐고 된통 야단을 맞고 쓰레기통을 뒤져 간신히 찾아냈다는 일화도 있다. 이 명예회장의 점심메뉴는 주로 된장찌개, 칼국수, 수제비 등이다. 다른 반찬이 남은 상태에서 추가반찬을 시키는 일은 없다. 삼복더위에도 부채와 선풍기만 있으면 된다. 10년 넘게 입어온 맨스타 트렌치 코트, 출장시 수행비서들과의 동숙, 등산이나 낚시 갈 때에는 9인승 승합차 이용 및 도시락 지참, 그룹 임직원들에게 옷 물려주기.. IMF 이후 달라진 생활 모습이 아니라 아낄 때와 쓸 때를 구분하자는 이 명예회장의 평소 생활철학이다. 은혜를 갚는 일이나 신의를 지키는 일엔 알뜰함이란 있을 수 없다. 꼭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만 쓴다. 그래서 이 명예회장은 장학사업, 마라톤 꿈나무 육성 등에 꾸준한 지원을 해오고 있다.

2014-11-09 12:08:24 김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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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삼구 회장 "한중 경제협력과 자유무역협정 체결 위해 노력하자"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8일 오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2014 한중CEO 라운드 테이블'의 한국 측 의장으로 참석, 회의를 주재했다. 8~10일 열리는 2014 APEC 최고경영자회의(APEC CEO Summit)와 연계해 개최된 이번 회의는 전경련과 중국국제다국적기업촉진회(CICPMC)가 공동으로 주최했다. 올해로 세 번째를 맞는 이번 회의에는 한국 측에서 한덕수 한국무역협회 회장,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 등 경제단체장과 권오준 포스코 회장, 강호문 삼성전자 부회장, 최성기 현대자동차 사장, 이어룡 대신그룹 회장,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 등 13개 기업의 CEO들이 참석, 양국 간 미래지향적 경제협력 방안과 자유무역협정 체결 필요성 등을 논의했다. 중국은 자산기준 세계최대 은행인 중국 공상은행(ICBC)의 장젠칭 동사장이 의장을 맡아 회의를 주재했다. 또한 청쓰웨이 중국국제다국적기업촉진회 명예회장, 위용 허베이철강 동사장, 리펑 베이징자동차 총재 등 주요기업인 13여명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박삼구 회장은 "양국 기업이 서로의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미래지향적 경제협력 방안을 모색하고 실현가능성이 높은 사안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실천 계획을 준비하는 뜻 깊은 자리였다"며, "앞으로 한중간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통한 경제 활성화와 금융, 통신,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동반자적 협력관계 구축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한국 측 의장을 맡은 박삼구 회장은 지난 2005년부터 한중우호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그동안 중국의 후진타오 전 국가 주석, 원자바오 전 총리, 시진핑 국가 주석, 리커창 총리 등 최고지도자들을 직접 만나며 민간외교 채널의 역량을 국가지도자급으로 끌어올렸으며 양국 간 경제 외교와 문화교류 증진을 위한 키 메이커 역할을 선도적으로 수행해왔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2014-11-09 12:04:07 임의택 기자
코오롱, 牛汀 이동찬 명예회장 별세(종합1보)

대한민국 경제발전 이끈 1세대 기업인…경총회장, 섬유산업연합장 역임 우정(牛汀)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8일 오후 4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고인은 1922년 경북 영일군에서 태어나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2년 수료하고 부친인 故이원만 코오롱 창업주를 도와 사업에 뛰어 들었다. 이 명예회장은 1957년 4월 12일 부친과 함께 '한국나이롱주식회사'를 창립하고 국내 최초로 나일론사를 생산해 한국 섬유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설립 20주년이 되던 1977년에 코오롱그룹 회장으로 취임해 화학·건설·제약·전자·정보통신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며 국가경제 발전을 이끌었다. 이 명예회장의 경영관은 본인이 제정한 코오롱그룹의 경영이념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산업인의 사명에 투철하고 능률과 창의로써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는 보람찬 일터를 만들며 인간 생활의 풍요와 인류 문명의 발전에 이바지한다'라는 경영이념은 직원과 회사의 성공을 도모함과 동시에 국가와 세계에 기여하려는 의지를 담았다. 이 명예회장은 1982년부터 1996년 1월까지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올바른 노사관계 정립과 기업윤리의 확립에 앞장섰고, 1983년부터 3년간 한국섬유산업연합회 회장을 역임하며 섬유인의 오랜 숙원이었던 '섬유백서'를 발간하는 등 섬유산업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그는 대한농구협회 회장과 대한골프협회 회장, 2002 한.일월드컵대회조직위원회 초대 위원장도 역임하며 아마추어 스포츠 발전과 국가 이미지 제고에 이바지했다. 특히 코오롱구간마라톤대회, 코오롱마라톤팀 등을 창설해 대한민국 마라톤의 전성기를 이끌어 손기정 선수 이후 56년 만에 올림픽에서 우리나라가 마라톤 금메달을 따내는 쾌거에 기여했다. 1996년 코오롱그룹 회장 퇴임 이후에 이 명예회장은 미술 작품 활동에 전념해 1992년 고희전(古稀展), 2001년 팔순전(八旬展)에 이어 2009년에는 미수전(米壽展)을 열었다. 2001년부터는 '우정선행상(牛汀善行賞)'을 제정해 올해까지 선행인들에게 직접 시상을 할 만큼 애정을 표해왔다. 고인은 1982년 기업인으로서는 최고의 영예인 '금탑산업훈장'을 받는 등 49년간 기업인으로서 대내외의 존경을 받았다. 1992년에는 개인에게 수여되는 국내 최고의 훈장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기업인으로서는 최초로 수장했다. 이 명예회장은 1945년 신덕진 여사(2010년 작고)와 결혼해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을 비롯해 1남 5녀를 뒀다.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돼 코오롱그룹장으로 치뤄지고 발인은 12일 오전 5시다. 장지는 경북 김천시 봉산면 금릉공원묘원이다.

2014-11-09 11:53:01 김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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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진단] 전공 충실하면 삼성입사 가능성↑

삼성 새 채용제 "긍정적 효과" 기대 미국 대학에 입학하려면 우리나라의 수능시험과 비슷한 SAT(Scholastic Aptitude Test)에 응시해야 한다. 국내에서도 아이비리그 대학, 스탠포드대 열풍이 불면서 SAT라는 말이 일상 용어로 자리잡고 있다. 국내 재계 1위 삼성그룹의 계열사에 취직하려면 SSAT를 봐야한다. '삼성직무적성검사'의 줄임말인데 SAT의 유명세를 능가한다. 한해 응시자만 20만명이 넘는다. 서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이 중고생 참고서와 함께 SSAT 관련 문제풀이집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학원가에서도 SSAT 응시자를 겨냥해 다양한 강의를 진행하고 있고 족집게 과외를 받는 사람도 적지 않다. 최근 삼성그룹은 대졸 신입사원 채용제도를 내년부터 대폭 변경하기로 했다. 핵심은 SSAT를 보기 전에 '직무적합성평가'를 하는 것이다. 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연구개발(R&D)·기술·소프트웨어(SW)직군과 같은 이른바 공대 계열 지원자의 경우 전공 이수 과목 수·전공 난이도·취득 성적 등이 기준이다. 즉 대학을 다닐 때 전공 수업에 충실했다면 삼성 입사의 첫 관문을 상대적으로 쉽게 통과할 수 있는 셈이다. 영업·경영지원직군은 직무 에세이로 평가한다. 다만 삼성생명·화재와 같은 금융 계열사에 입사하려는 준비생은 마찬가지로 경영·경제 전공 공부에 충실하면 유리하다. '직무적합성평가'가 도입되면 SSAT 응시자가 적잖이 줄어들 전망이다. 이에 따라 이른바 '삼성고시'에 따르는 사회적 비용이 감소하고 학생들이 전공 과목에 심혈을 기울이는 긍정적인 효과도 예상된다. 토익 900점·어학연수·봉사활동과 같은 '취업 3종 세트'에 신경을 덜 써도 되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물론 삼성이 풀어야할 숙제도 많다. ▲서울 소재 대학과 지방대 학생의 성적을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 것인지 ▲전기전자공학과와 화학공학과를 상대적으로 다룰 것인지 ▲직무에세이가 또 다른 서류전형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게 하는 일 등이다. 일단 재계와 취업시장에서는 삼성의 이번 발표를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며 반기고 있다.

2014-11-09 11:21:45 박성훈 기자
한화, 첨단소재기업 세종시 이전

한화그룹(회장 김승연)내 첨단소재 전문기업인 한화첨단소재(대표 김창범)가 현재 서울 중구 장교동 한화빌딩 소재 본사를 주요 사업장이 위치한 세종시 부강면으로 이전한다. 한화첨단소재의 본사 이전은 소재 및 성형사업의 특성상 빠른 시장변화에 대응하고, 제품차별화 및 원가경쟁력 제고를 위한 것이다. 또 충청지역 연고기업인 한화그룹이 일부 계열사의 본사를 옮기며 지역경제 살리기와 함께 사회공헌활동 강화를 통한 지역사회와 동반성장에도 노력한다는 취지다. 김창범 대표는 지난 10월부터 세종시로 출근하고 있으며, 매주 월요일에 열리는 주간 임원회의도 세종사업장에서 진행하고 있다. 12월부터 기획, 인사 및 각 사업부 기획팀 등 주요 임원을 비롯한 관련 부서가 한화첨단소재 세종사업장 내에 마련된 사무실에서 업무를 시작한다. 우선 본사 인력 중 12월내 일부 인원이 옮겨가며 내년 하반기 지하 2층, 지상 4층 규모의 본사 신축건물이 완공되면 자동차소재, 태양광소재 부문의 영업인력을 제외한 본사 직원이 모두 옮겨간다. 또 현재 대전에 있는 R&D센터도 세종시 조치원읍으로 이전할 예정이다. 김창범 대표는 "본사와 사업장간 시간적 물리적 거리를 없앤 만큼 빠른 의사결정과 스킨십으로 업무 시너지 효과가 증대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충청권 대표기업으로 충청지역 경제 및 산업 발전에도 보탬이 되고자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화첨단소재는 세종시와 충북 음성군 두곳에 국내사업장을 운영하고 있다. 자동차소재, 태양광소재, 전자소재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해외 사업장을 포함해 1조원이다. 이중 해외 매출액이 45% 가량인 국내 대표적인 소재 전문기업이다. 주요 생산품목은 자동차 경량화 등을 위해 범퍼나 의자 등받이 등에 주로 쓰이는 GMT(유리섬유 강화 열가소성 플라스틱)이다. 현재 세계 GMT시장의 70%를 점유하며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 사업장뿐 아니라 미국 앨라배마와 버지니아, 중국의 베이징과 상하이, 체코 오스트라바 등에 해외법인과 공장을 설립해 글로벌 자동차 소재 회사로 위상을 높여나가고 있으며, 2020년까지 해외법인도 9개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2014-11-09 10:40:18 김태균 기자
SK 창조경제혁신센터 지원 본격화

그룹 수뇌부 지휘…임원 10여명 상시 참여 SK그룹의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추진 속도가 빨라진다. 그룹 최고 경영진이 직접 주도하는 조직을 구성하는 등 지원체제를 본격적으로 갖췄기 때문이다. SK그룹은 9일 "그룹 최고 협의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 산하에 창조경제혁신추진단과 창조경제혁신센터를 구성하고 그룹의 역량을 총 집결해 창조경제를 활성화하고 조기에 성공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SK그룹은 이미 지난달 29일 수펙스추구협의회 김창근 의장 등 전 관계사 CEO가 모인 CEO세미나를 열고 "창조경제에 부합하는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SK의 성장과 국가와 사회의 발전을 견인하는 창조경제 생태계 구축에 전력을 다하자"고 결의한 뒤 창조경제혁신추진단 구성에 합의한 바 있다. ◆SK텔레콤 하성민 사장 단장 선임 단장에는 SK텔레콤 대표이사인 하성민 사장이 선임됐다. 하 사장은 대전창조경제혁신센터의 밑그림을 그렸고 준비작업을 진두지휘 해왔다. 그룹 전체의 역량을 집중시켜 창조경제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주력회사의 CEO가 창조경제혁신추진단장을 맡을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SK측은 설명했다. SK그룹은 또 김창근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및 산하 7개 위원회 위원장, 창조경제혁신센터 관련 회사인 SK하이닉스, SK E&S CEO로 구성된 협의체도 발족했다. 또 추진단의 실무조직으로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만들고 대전센터운영팀, 세종프로젝트추진팀, 창조경제기획팀 등 3개 조직, 20여명으로 구성을 마무리했다. 수펙스추구협의회 및 관련 회사의 임원 10여명도 상시 지원 형태로 직접 참여한다. ◆대전혁신센터 벤처기업지원 시작 SK는 이같은 조직을 구성하면서 대전창조경제혁신센터와 세종 창조마을 구축에 속도를 높여나가고 있다. SK는 대전창조경제혁신센터에 입주한 벤처기업을 상대로 판로개척, 멘토링, 기술교육 등을 지원하면서 성공 모델을 조기에 만들어 낼 기반을 조성하고 있다. SK는 지난 5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사물인터넷진행주간에 엑센과 씨엔테크를 전시업체로 참여시켰다. 또 내년 3월에는 세계 최대 모바일 제품 전시회인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 전자칠판 솔루션을 보유한 ISLKorea와 동반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는 벤처기업을 국내외 대형 전시회에 참석시켜 판로와 마케팅을 지원하고 기술의 신뢰성과 인지도를 높여 시장경쟁력을 강화시키겠다는 취지다.

2014-11-09 10:39:28 박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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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성 삼성종합화학 사장 "군경험 회사서 통한다"

"군대에서 제대로 익힌 습관과 경험은 회사에서도 통합니다. '죽은 사람 살리는 것 빼고 모두 다 된다'는 군대 구호 하나도 경영현장에서는 원가 혁신 목표를 달성하는 정신이 됐습니다" 정유성 삼성종합화학 사장은 지난 7일 육군사관학교 을지강당에서 열린 삼성그룹 토크콘서트 열정樂서 강연에서 이 같이 밝혔다. 삼성전자 인사팀장과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인사지원팀장을 역임한 정 사장은 '리더십'을 주제로 1000여명의 사관생도에게 군에서 리더십과 소통능력을 키우는 노하우를 전했다. 정 사장은 먼저 자신의 군복무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1979년 강원도 인제에 자리한 2사단에서 학군장교로 군 생활을 시작했다. 지금은 서울에서 차로 두 시간이면 갈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인제(강원도)와서 원통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산간 오지였던 곳. 산골 부대로 온 것도 서러운데 부대생활은 '월화수목금금금'의 연속, 훈련으로 쉴 틈이 없었다. 대간첩작전에 파견돼 3주간 '실전'도 경험했다. "뭐 이리 힘든가" 싶었지만 신기하게 일이 싫어지거나 몸이 지치지도 않았다. 바로 '성취감' 때문이었다. 대대 대표 관측장교로 처음으로 '리더' 역할을 맡은 게 계기가 됐다. 합리적인 지시를 내리고 누군가를 더 잘 교육시키려면 나부터 혁신해야 했다. 그때부터 메모와 주변 정리 습관, 철저한 시간관리 습관이 몸에 배기 시작했다. 차츰 리더에 익숙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자신감도 생겼고 '젊은 나이 어디서 이런 경험을 쌓을 수 있나' 생각도 들었다. 전역 후 삼성전자에 입사 지원했다. 면접관이 본인의 약한 점을 물었을 때 "3남1녀 집안의 막내로 태어나 리더십이 부족했지만 군 복무를 통해 리더십을 보완했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했고 삼성에 입사할 수 있었다. 군에서 익힌 경험은 회사에서도 통했다. 메모 습관은 20여년간 빈틈 없는 인사 업무의 동반자로, 정리정돈 습관은 사업장 안전경영에 도움이 됐다. 군대에서 배운 "죽은 사람 살리는 것 빼고 모두 다 된다"는 구호는 경영현장에서 제조업 원가 혁신이라는 목표 달성의 정신이 됐다. 정 사장은 "제게 군대는 정통 '인생훈련코스'였다. 군대에서 배운 리더십과 소통능력을 통해 회사 생활의 '달인'으로, 그리고 CEO의 자리에도 오를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자신이 군대와 회사 생활을 통해 익힌 '리더십 함양'의 노하우를 소개했다 ▲먼저 소통하라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작은 것부터 실천하라 ▲솔선수범하라 등 네가지다. 특히 다양한 출신과 임무, 계급을 가진 사람이 모인 군대에서는 '자주 만나 자주 듣는' 소통능력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리더십 해답"이라고 강조했다. 또 삼성에서 근무하는 육군사관학교 출신 선배의 활약상도 소개했다. 정 사장은 인사 전문가로 지켜봐 온 사관학교 출신 임직원의 강점으로 ▲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갖춰 기본이 탄탄하고 ▲ 전략적 마인드와 실행력이 강하고 ▲ 생도시절부터 리더십 훈련으로 조직관리 능력이 우수하다고 덧붙였다. 정 사장은 "지금 공부와 훈련은 바로 미래를 만드는 경험"이라며 "최선을 다한 순간이 모여 각자 멋진 미래를 만들 수 있도록 매 상황에 진지하고 충실히 임하라"는 당부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이날 열정樂서 '육군사관학교편'에서는 개그우먼 신보라가 진행을 맡았고 걸그룹 베스티의 미니콘서트도 열렸다. 한편 삼성 '열정樂서'는 2011년 10월부터 현재까지 20개 도시에서 79회가 개최된 대한민국 대표 토크콘서트로, 26만명이 참여했다.

2014-11-08 19:15:50 김태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