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범 입시토크] 수행평가의 민낯: 사고력 킬러인가, 입시의 덫인가?
수행평가는 학생의 사고력과 탐구력, 학습 참여를 평가하기 위해 도입됐다. 그러나 지금 교실의 현실은 밤샘 과제에 시달리는 학생, 채점 지옥에 허덕이는 교사이다. 교육부가 2학기부터 '수업 시간 내 수행평가, 과제형 금지'를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지만, 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교육의 본질은 훼손될 위험이 크다. 깊이 있는 사고와 비판적 글쓰기 역량이 중요한 시대에 수행평가가 형식적인 기록에 머문다면 교육의 방향은 더욱 흔들릴 것이다. ◆수행평가 부담의 근본 원인: 입시와 연결된 구조적 문제 학생 부담의 근본 원인은 평가 자체가 아니라 구조에 있다. 수행평가 점수는 학생부 세특과 연결되고, 세특은 다시 대학 입시의 중요한 변별 자료로 사용된다. 전국 중등교사노조 설문에서도 교사 열 명 중 여섯 명 가까이가 수행평가 횟수와 난이도 조정을 원했지만 현실은 다르다. 각 교육청은 수행평가 반영 비율을 일률적으로 제시하고, 교사는 최소한의 평가 횟수를 맞춰야 한다. 결국 수행평가는 수업의 일부가 아니라 '입시용 도구'로 변질된다. 절반 이상의 교사가 수행평가가 세특 기록용 형식에 불과하다고 응답한 것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증명하는 것이다. ◆고교학점제, 학생과 교사를 삼중고에 빠트리다 올해 전면 도입된 고교학점제는 부담을 더 가중시키고 있다. 선택 과목이 늘어나면서 수행평가 횟수도 증가했고, 세특 기록이 학기 단위로 확대되면서 교사의 기록 부담은 두 배가 됐다. 학생들은 수능 준비, 내신 학원, 수행평가, 생기부 활동까지 삼중고, 사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수행평가는 사고력 평가가 아니라, 생기부 한 줄을 채우기 위한 기록 생산 수단으로 전락했다. 고교학점제에 맞춰 학생들이 불필요한 평가에 시달리지 않도록 과목별 수행평가 횟수 상한을 도입해야 한다. 이러한 방안은 단순히 '수업 시간 내 수행평가' 원칙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것이다. ◆공정성 역설: 수행평가가 오히려 교육 격차를 심화시킨다 '교내 평가'원칙은 학교 간 격차를 키우고 있다. 사교육으로 이미 심화된 지식과 훈련을 받은 특목고 학생들은 손쉽게 고품질의 결과물을 만든다. 반면, 기초 학습 역량이 부족한 학생들은 주어진 시간 내에 깊이 있는 내용을 담아내기 어려워 탐구 기회를 잃게 되고, 학생부 기록은 획일화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평가는 준비된 배경 지식과 속도에 의존하게 되며, 대학은 다시 학교 서열과 배경을 기준으로 학생을 평가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는 교육부가 목표로 한 '공정성 강화'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역효과를 낳는 것이다. 핵심은 평가 방식이 아니라 평가 구조이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평가 결과가 대학 입시 변별 자료로 직접 사용되지 않도록 지침을 개정해 학생과 교사가 입시 부담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또한, 교사 재량권을 확대해 과목별 평가 횟수, 난이도, 과제 유형을 교사 자율에 맡겨 실질적인 평가가 이뤄지게 해야 한다. 아울러, 단순 점수 경쟁이 아닌 학생의 성장을 진정성 있게 담아내는 '질적 평가'로 세특 기록 방식을 전환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교육부의 현행 대책은 겉보기에는 학생 부담을 줄이려는 의도지만, 오히려 교육 격차를 심화시키고 평가 본연의 목적을 훼손할 위험이 크다. 수행평가는 학생이 스스로 탐구하고 사고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본질이다. 이를 회복하려면 단순 규제보다 평가 결과가 입시에 지나치게 연계되지 않도록 구조를 조정하고, 교사의 자율성을 보장하며, 세특 기록 방식을 성장 중심으로 전환하는 과감하고 근본적인 구조 개편이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