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뒤짚은 '세기의 재판', 증거 없이 용두사미로 끝나나
'세기의 재판'으로 불리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이 용두사미로 끝날 것으로 보인다. 27일 서울고등법원에서는 이 부회장 등에 대한 항소심 17차 공판이 열린다. 이날 재판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증인으로 신청됐으나, 불출석할 경우 결심공판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법조계는 박 전 대통령이 출석할 가능성이 희박한 만큼, 이날 재판이 결심공판일 것으로 내다봤다. 1월 말 경으로 예상되는 선고를 제외하면 항소심 일정이 끝나는 셈이다. 많은 관심을 모았던 이 재판의 쟁점사안은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삼성의 현안 청탁 여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관계 등이다.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한 1심 재판부는 "개별적 현안에 대해 명시적으로 청탁하고 뇌물을 공여한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대통령 요구에 의해 승계 작업과 관련한 묵시적 부정 청탁을 한 점이 인정된다"고 판결한 바 있다. 또한 1심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과 최서원의 공모관계가 인정된다"며 "공무원(박 전 대통령)이 비신분자와 공모해 공동정범에게 뇌물을 받게 한 경우, 이는 자기 자신이 받은 것과 동일하게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승마지원과 영재센터 출연은 뇌물로 판단됐는데, 여기에 횡령과 재산국외도피, 범죄수익은닉 등이 적용됐다. 제3자 뇌물죄로 기소된 미르·K스포츠 출연금은 무죄가 선고된 바 있다. ◆경영권 승계 청탁?… 증거는 없어 두 가지 쟁점 모두 박 전 대통령이 깊게 연관된 사안이지만 1심 재판에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2심 역시 27일 박 전 대통령이 불출석할 경우 이에 관한 신문이 이뤄지지 않은 채 재판이 종결된다. 2심 재판부는 "증인이 불출석할 경우 증인의 재판 신문조서로 대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오랜 기간 자신의 재판에도 불출석한 탓에 피고인을 신문한 조서도 없는 상황이다. 특검은 공소장을 변경하며 1심에서 인정된 1차 독대 이전에 '0차 독대'가 있었고 삼성이 0차 독대에서 부정한 청탁을 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하지만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증거는 안봉근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의 불분명한 증언뿐이다. 안 전 비서관은 "당시가 2014년 하반기인 것은 기억하지만, 구체적인 날짜는 기억하지 못한다"면서 "이 부회장에게 명함을 받아 휴대폰 전화번호를 저장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부회장 명함에는 전화번호가 적혀있지 않았다. 또한 특검이 청와대 경호처에 신청한 사실조회에서 박 전 대통령의 안가 출입 기록은 있었지만 이 부회장 출입 기록은 확인되지 않았다. 독대가 있었더라도 당시 나눈 대화 등은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증거 없이 특검의 주장만 존재하는 셈이다. 변호인단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후계자로 이재용 부회장을 지목한 순간 경영권 승계는 예정된 것"이라며 "지분 상속 등의 절차가 뒤따르겠지만 승계를 위한 별도의 작업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또한 "0차 독대가 실존한다면 이 부회장의 출입 기록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전 대통령 뇌물수수도 미확인 박 전 대통령 본인의 재판이 파행을 겪으며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공모 여부와 경제적 공동체 관계 등도 밝혀지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를 공동정범으로 인정, 삼성이 최순실씨에 제공한 승마지원을 박 전 대통령에게 주는 뇌물로 해석했다. 2심에서도 둘의 공동정범 여부, 범죄 수익 공유 등은 증거가 부족해 제대로 다뤄지지 못했다. 때문에 특검도 직전 공판에서 공소장을 기습 변경하며 직접뇌물죄를 적용했던 승마지원에 제3자 뇌물죄를 추가했다. 제3자 뇌물죄가 인정되려면 '부정한 청탁'이 있어야 하지만, 특검이 그 증거로 내세운 것은 구체적 시기조차 특정되지 않는 0차 독대가 유일한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특검이 스스로 '승마지원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이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만 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순실씨는 최근 항소심 15차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마필과 차량의 소유권은 처음부터 삼성에 있었다. 말 계약서는 독일법에 따라 체결됐다"며 "편하게 타라는 취지로 (정유라에게) 네 말처럼 타라고 했고 말 교환은 삼성이 지원을 끊는다니 임의로 시도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당시 증인신문에서도 승마지원으로 인해 박 전 대통령에게 경제적 이득이 돌아갔거나 청탁이 오갔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한편 27일 17차 공판에 박 전 대통령이 출석하지 않을 경우 이날 재판에서는 피고인 신문과 변호인 의견진술, 피고인 최후진술, 검찰의 구형이 진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