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은 책과 함께] 책과 세계
강유원 지음/살림 텍스트는 컨텍스트라는 맥락에서 나온다. 행간을 읽으란 말은 글 자체에 집중하는 대신 이 텍스트가 나온 맥락에 주목하란 의미로 사용된다. 강유원 박사의 '책과 세계'는 텍스트를 고전으로 한정하고 컨텍스트를 세계로 확장한 저작이다. 책은 인류 최초의 서사시인 '길가메시 서사시', 구약성서의 핵심인 '모세 5경', 영원한 내세를 제시한 '사자의 서', 트로이 전쟁을 소재로 인간의 잔혹함과 야비함을 그려낸 '일리아스',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 등 주요 고전 15권이 어떠한 역사적 맥락에서 세상에 나왔는지를 추적한다. 이중 가장 눈에 띄는 건 '모세 5경'의 탄생 배경이다. 성경은 크게 구약과 신약으로 나뉜다. 후자의 핵심은 복음서이고, 전자의 핵심은 '창세기, '출에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로 이뤄진 모세 5경이다. 책은 히브리 민족의 서사시라 할 모세 5경에 등장하는 야훼를 전지전능하지만 피에 굶주린 잔인하고 가차없는 신으로 본다. 야훼가 히브리 민족을 자신의 백성으로 점지하고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약속했지만 이것을 순순히 내주지 않아서다. 신은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자식을 죽여 자신에게 제물로 바칠 것을 요구한다. 또 마술과 형상을 혐오하는 이 신은 백성들이 기다리다 지쳐 금송아지를 만들자 분노해 이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저자는 "모세 5경의 야훼는 인간이 공포로 움직이는 존재임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간들은 항상 두려움에 떨고 있다"면서 "야훼는 말로써 만물을 만들어내는데 그의 전지전능함, 잔인함의 원천은 바로 '말', 텍스트, 로고스"라고 주장한다. 이어 "말로써 세계를 창조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는 이미지 죽이기, 즉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진리화의 원천이며 나아가 인간 본능에 대한 가학적 억압이자 텍스트에 대한 노예화의 출발"이라고 분석한다. 성서라는 텍스트가 '믿음', '신앙', '신', '종교'를 세상 밖으로 게워내며 죽음의 서막을 올린 것이다. 93쪽. 6800원.